가구재료이야기

가구를 만들때 가구에 쓰이는 재료는 어떤것이 있을까?

오늘은 자개장에 대해 가구이야기 하려합니다.

가구닥터

오늘은 어린시절 아버지가 자개장 공장을 하셨던 때 -  

자개장에 대한 추억의 가구이야기 하려 합니다.


저는 아버지때부터 약 80년 거쳐서 가구에 관한일을 해 왔습니다.

어린시절 가구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때는, 

자개장이 한국가정의 안방 거실을 차지하는 가구로는 자개로 문양을 붙이던 

자개장이 대표적인때 이었어요. 


자개장을 집집마다 마련해 놓기전에는 우리들이 흔히 상상하는 

"조선시대 목재가궤짝"의 형태의 "반닫이장"의 형태의 가구가  

집집마다 갖추고 있던때, 우리의 방안에는 변변히 옷을 보관하는 기능을 가진

지금의 "장롱"모양의 보관장이 없었던때 이었어요.


옷은 벽에 못을 박아서 옷걸이로 보관하는 정도 였으니까요.

상상이 가시나요... ㅋ


그때, 자개장은 초보적인 대중의 보관장으로 초기 자리매김하던 때였던것 

같아요. 주부들에게 자개장은 환상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키던 물건이었습니다.


그것은 집안의 재산목록 1호를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약에, 내옆집이나 가족 친구 친지의 집에  "반짝 반짝이는 자개장롱과 

문갑 등 세트"로 커다란 안방에 들어앉아 있으면,  그것은 "부자"를 상징하는 

물건  이였습니다. 


아직도 전통을 지키는 고사모 공방 010 5540-3800


주부들은 너나 할것없이 갖고싶은 물건 1호 였어요."

나도 언젠가는 저것보다 더좋은 반짝이는 각종 문양의 화려하게 연결된 

예술작품 그림처럼 펼쳐진 저 자개장을 사고야 말거야 샘이나 뽀로통 하던

그런 물건이였어요. 


내놓으라하는 부자집은 물론이고, 

도심의 중간층도 비싸면 여유있는 부잣집에는 어김없이 그 자개장이 안방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조금은 어렵지만 도시의 중간층도

자개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결혼할때, 신부가 시집을 갈때 선택할것은 이 자개장 세트(자개장 문갑)밖에 

없던 시절이예요.

(예, 경기도 수원기준- 어릴적 수원인구 18만명 -현재 수원인구 약 130만명)

               아직도 전통을 지키는 고사모 공방 010 5540-3800


시골은 어떠했을까요,(수원기준- 주변의 농사짔던 도시)

시골의 자개장의 물건값은, 거의  쌀가마니로 대신값을 치뤘어요.


도시나 시골의 자개장의  배달 시스템은 어땠을까요. 오늘날같은 차량으로 

운송을 하던 것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도시와 그리고 시골  자개장 가구배달을 가려면 ,

"큰  마차바퀴가 있는 소달구지"에  자개장을 

일직선으로 싫지않고 자개장을 뉘여서 싫었답니다. 


그리고는 시골 큰돌멩이들이 있는 비포장길을 20리 30리길도  마다치않고 

가던 "소달구지"부대들이 가구점 한쪽골목에는 아침해가 밝기도 전에 

있었었어요.  


왜냐구요 일찍오는 달구지꾼이 먼저 자개장을 싫을수 있는 권한이 생김니까요..

그것은 곧 소달구지꾼의 생계와 연결되었어요. 그것은 또한, 새벽일찍 자개장을 

싣고 나가야 어스름한 저녘녁에 도착할수가 있었어요.


 아주 먼 시절도 아니랍니다 .  

약 45년에서 50년전 이야기입니다.


이건 바퀴가 세개가 달려서 "삼륜차"라고 합니다. 지금도 베트남등 동남아 

국가에서 사용중이지요.

 tv나 유튜브에서 보면 자주등장하는 그나라의 대중 운송 수단입니다.

그때는 이삼륜차를 이용하는것이 비용이 엄청났답니다.


보통 소 달구지로 자개장을 배달하면 쌀로 몇가마씩 자개장 물건값으로 

받아오곤 하셨답니다.


시간은 하루를 넘겨 이틀이 걸릴적도 있고 ,

자개장을 산집에서 하루묶고 다음날 오기도했어요.


그 어린시절에도 배달을 마치고 돌아온 아저씨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자개장롱은 집안의 보물이었으며 하루묵을때는 저녁으로

집안의 제일 좋은 음식을 내놓곤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면 소달구지 로 자개장을 배달하시던 아저씨는 주인이 정성스러운 정이

가득한 시골 음식과 막걸리 몇잔과 두런두런 전기도 들어오지않는 시골동네의 

이야기에 , 아저씨는 그날의 피곤이 언제 그랬냐는듯 싹 풀리는느낌 

이었다고 합니다.

(하루10시간 이상 걷는다고 생각해보세요. 몸이 안쑤시는곳이 없을듯해요)

 


그것은 불과 약 50년 이전의 우리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삶

이었고  시간이였어요,


자개장의 가치는  집안의 보물이였고, 

그때는 그것밖에 커다란 솜이불과 옷들을 보이지않게 방안을 깔끔하게 보이는

보관장으로의 역할과 화려한  자개와 함께 전통적인 문양에 꼭 커다란 

예술작품에 둘려싸여서 생활하는 느낌이였을 거예요.

배고프고 춥던 생활하는데 없던 것이 더많은때, 

전쟁이후 10년이 지난 사회였던거예요.


오늘날 가구를 보세요 다양한 형태의 보관장이 있고,

다양한 칼라로 우리들을 유혹하고 있지요.


참 종류도 많아요 개별 생활에 맟춤하는 가구로 되어지는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가구닥터


다음은 철재가구에 대하여 기억을 더듬어 보려 합니다..   - 가구닥터-

"가구닥터"라는  브랜드 이름은,

"가구전문가"라는  뜻입니다. (특허청의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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